 |
|
 |
|
|
가끔 故 노무현 대통령을 검색한다. 검색하여 그 분의 이런저런 사진을 뵐 때마다 이미 세상에 없는 분이라는 사실이 새삼 잔인하여 가슴이 멍멍해지곤 한다. 열혈 노사모인적도 없고 살아생전 뵌 적도 없으며 권좌에 계실 때 가끔 돌같은 비난을 던졌던 나였을 뿐이다.
한번은 가까운 분이 청와대에 다녀오면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책을 보여준 적이 있다. 책 표지를 들추니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이라는 글자가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유해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유려한 필체로 적혀있는 것을 보면서 아, 대통령의 글씨가 이렇구나 한 적이 있다.
만년필로 직접 적은 그 분의 필체를 들여다보는 일도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일처럼 사람을 만난 것일까.
참으로 한 시대를 좌우할 가치란 당대에는 늘 박해받고 후대에 가서야 빛을 받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세상의 눈이 아직 제대로 뜨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노무현은 잘못하신 분이다. 또한 노무현은 잘하신 분이다. 그러나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아닌 일을 시도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른 뒤에 좀더 정확해질 것이다"
|
|
|
|
가끔 도시에는 먼 이야기처럼 눈이 내리고 지친 짐승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그곳을 지나곤 한다. 그림자처럼 고개를 묻고 밤길을 걸어간 짐승들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불빛은 밤새 그들의 안부가 궁금한 것이다.
|
|
|
|
기온이 뚝 떨어졌다. 모처럼 겨울답게 칼바람이다. 밤늦게 귀가하여 외투를 벗는데 외투에 달라붙어 따라 들어온 찬바람이 서둘러 따뜻한 거실에 몸을 묻는다. 시퍼렇게 살아있던 찬바람이 형체도 없이 소멸되는 순간,
|
|
|
|
엄마의 굽은 등
김 수목 詩人
엄마는 오늘도 일하시나보다 전화를 안 받으신다 새벽부터 텃밭에 나가 꼼지락꼼지락 잡초를 뽑고 고추나 들깨 같은 모종을 옮기시겠지 엄마의 텃밭은 엄마의 굽은 등만큼이나 구부러져 있다 구불텅거리는 텃밭길을 따라 고추도 콩도 구불거리며 자란다
엄마는 구부러진 못을 박아 만든 작고 찌그러진 닭장에서 등을 동그랗게 굽혀 알을 꺼내 오신다 평생을 알처럼 우리를 품고 사신 엄마는 굽은 등이 더 굽어져 둥근 알을 닮아 가신다 둥글게 둥글게 우리를 안아 주려 굽어가신다
* 시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짠해져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도 하는것. 굽은 등, 굽은 삶, 하여 등편하게 눕지도 못하는 엄마의 삶......
|
|
|
|
사 각 형
성일권
사각형 아파트의 사각형 방에서 일어나 사각형 밥상에서 사각형 샌드위치를 먹고 사각형 가방을 들고서 사각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각형 문을 넘어 사각형 전철에 몸을 실으니 온통 사각형 괴물들이 널부러져 있네 외계인의 히멀건 얼굴을 지닌 괴물들은 사각형 휴대폰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각사각 지껄이네
다시 친구가 시를 보내왔다. 사각형. 사각형은 구속의 원형질 같은 것이 아닐까. 각진 인생, 누군가는 그 각에 찔리기도 하고.... 그리고, 인간은 죽어서도 사각의 관속에 눕혀지는 것을.
|
|
|
|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다가 잠들었나 보다. 잠자는 내내 불편했고 슬픈 악몽도 꾸었지만 새벽까지 일어날 줄 몰랐다. 여전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쇼파에 앉히고 새벽이 오는 밖을 바라본다.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점차 마음속 절규로 바뀌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주실까~ 아직도 이 죄인의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을까. 힘겹고 서글픈 마음으로 새벽풍경을 바라보자니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일꾼들이 보였다. 어둠을 퍼내는 일꾼들, 빛을 부려다 놓는 일꾼들....... 이 새벽에 저 인부들은 누구일까. 누구일까~ 그러나 막노동 인부들은 점점 지워져가고 있었다. 어둠을 퍼 날으면서, 빛을 부려놓으면서. 하나님, 저도 밝아질 수 있지요? 저도 저 인부일 수 있지요? 내면의 절규가 쉬이 그치지 않는 새벽이었다.
|
|
|
|
시인이 그랬다. 바람보다 먼저 누우라고. 이미 쓰러져 더 누울 것도 없지만 눈이라도 꼭 감고 돌아누워볼 일이다. 지금은 이렇게 견뎌내야 한다. 누워야 하는 삶이 있다면 다시 일어서는 삶도 분명 있을 터. 힘내시게, 엎드려 누워도 대지를 두드리는 심장소리 들리지 않나! 쿵쿵~쿵쿵~
|
|
|
|
종일, 두 눈 꾹 눌러 감고 몇몇 허상들만 힘없이 매만진 하루였다.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은 저만큼 떨어져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왔다. 도데체 뭐하느냐는 삿대질과 비아냥들~ 나는 변명할 의욕도 느끼지 못한 채 다만, 허리굽은 나무처럼 잠을 잤다. 꿈을 꾸었나 보다. 꿈속에서 톱질을 했다. 톱질을 할 때마다 허연 톱밥이 푹푹 쏟아졌지만 나무는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독한 나무였다. 무슨 나무일까. 궁금하여 살피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허공이라니! 허공에 대고 톱질이라니!
현실은 꿈을 지우고 꿈은 현실을 지우길 몇번, 겨울 밤은 속살을 다 내놓고 깊어간다. 문득 꿈에 본 허공을 두드리고 싶어진다.
거, 누구 없소~! 거, 누구 없소~!
|
|
|
|
아이들이 학원수업 마치고 오느라 밤늦게 초인종을 누르곤 한다. 나 왔으니 문열어 달라는 것.
먼 훗날, 언젠가는 나도 삶을 다 마치고 하늘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하늘문이 열릴 수 있을까~
|
|
|
|
생각해보니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 삶을 한번도 살지 않는 것 같다.
|
|
|
|
평범한 상식에 열정을 다하자.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안타까운 사진 한장. 대구 지하철 참사 직전, 힌 연기가 지하철 내부에 피어오르는데도 코와 입을 막고 가만히 앉아있는 승객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왜 그대로 앉아있었을까. 연기는 불이 나고 있다는 징후임을 몰랐을까. 그들이 힌 연기에 콜록거리면서도 지하철을 탈출할 생각을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앞자리, 옆자리에 있는 승객들이 그대로 앉아있기 때문이었다. 승객들중에 단 한명이라도 위험하니 얼른 탈출합시다 하고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엄청난 희생을 가져온 참사에 대한 서글픈 가정이지만 코앞에 닥쳐온 절치절명의 위기에도 태연한 모습의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부실투성이의 인간심리를 보는 듯하여 더없이 쓸쓸하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어떤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는. 벗어난다 해도 남들이 하는 것 보고 하려는 그 군중심리. 실패가 다수이고 성공이 소수인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누군가를 따라하려는 심리, 그것은 실패의 길이다. 외롭고 두렵지만 내 생각대로 하는 소신, 그것은 성공의 길이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는가? 나를 존중하는가? 나에게 전달되어오는 나로부터의 미세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가? 내 시선은 군중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내부에 돌려져야 할 일이다.
|
|
|
|
닉네님을 바꿔봤다. 봄빛이 싫어서가 아니라, 봄빛을 그리워 하기 위해서. 하여 바꾼 이름은 괴테의 삼촌이다. 좀 별나지만 짓고보니 쓸만하다. 괴테에 대하여 잘 모른다. 다만, 세계 문학사에서 분명한 족적을 남긴 분이라는 것. 근데 왜 삼촌일까. 어렸을 때 삼촌은 대단한 의미였고 권위였다. 초딩 또래들은 산골길을 걸으면서 별별 시덥잖은 이야깃거리로 목소리를 높였다. 가령, 레슬링 김일선수가 박치기로 황소를 눕혔다든가, 차범근 선수가 백미터를 4초에 달린다든가...... 기다, 아니다, 맞다 아니다..등등 싸우다가 "서울에 사는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하고 하는 순간, 우리는 깨갱해야 했다. 서울, 그것도 삼촌이 그렇게 말했다는데 무슨 반론이 필요한가. 마음 한편 깨름칙하면서도 우리는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 괴테의 삼촌은? 그 삼촌이 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것이다. 괴테는 삼촌한데 무슨 말을 들었을까. 혹 그가 쓴 글에 삼촌이 해준 말은 없었을까. 요즘은 내가 슬며시 그 삼촌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
|
|
|
맛을 안다는 것. 몰입과 무관심의 경계 같다. 뭐든 맛을 알면 어떤 강제적 권유나 독촉은 필요 없다. 맛을 위해서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원이가 그렇다. 공부맛을 확실히 안것 같다. 학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아이들과 함께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날이 많다. 공부 언제 할래 엉! 하고 윽박지르던 날과 비교하면 천지개벽할 일이지만 한편, 안쓰럽고 안타깝기도 하다. 헬쓱한 얼굴, 캄캄한 밤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빛나는 두 눈빛, 지침과 의욕이 뒤범벅되어 있는 아이 눈빛을 보노라면 종종 이런 생각도 든다. 벌려놓은 짐들, 다 싸들고 이곳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자유와 꿈이 우주처럼 공존하는 삶을 맛보게 하고 싶다고. 그렇다. 맛은 여러 종류다. 질겅질겅 씹어야 맛이 나는 육식도 있지만 사각사각 깨물어도 맛이나는 채식도 있는 법이다. 어떤 욕망을 씹어서 가장 먼저 소화시켜야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무엇들, 그 수많은 기회들도 나름대로 인정받고 존중되는 나라, 그곳으로 도망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그러나 그것은 나라의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이리라!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
대원이가 아는 맛은 무엇일까. 경쟁의 기쁨일까. 묘한 승부욕일까.
그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참기쁨, 그 맛이길 바랄 뿐이다.
|
|
|
|
나만이 해독할 수 있는 언어, 숨소리다. 요 며칠 사이, 내 숨소리는 종종 한숨이다. 중년을 지나면서 살아온 과거와 살아갈 미래는 거의 같은 무게로 내 안에서 호흡하는 것인데 살아갈 경계는 어둡기만 하고 살아온 날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한다. 용서없이, 참회없이 살아온 날이 삼킨 대못은 날마다 가슴에서 커가고 그 가슴, 피흐르는 날이면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어 눈을 질끈 질끈 감곤 한다. 이른 아침부터 겨울이 서 있는 창밖을 본다. 펑펑 눈을 쏟아낼 듯한 하늘이다. 하늘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억만년을 살아온 늙은 하늘이 비늘처럼 힌 눈을 벗겨내면서까지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땅 깊은 수맥처럼 눈물이 따뜻한 사람의 품에서 천년의 꿈으로 고해성사하고 싶은 이 아침이다.
|
|
|
| |
|
 |
|
 | |
|